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 영화 '해피투게더'의 배경인 아르헨티나. 영화를 제대로 안 봐서 잘은 모르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배우들이 좋은 영화로 꼽는 영화다. 모든 영화인들이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예능에서 배우들이,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닌 다른 프로그램에서, 몇몇의 배우들이 모두가 이 영화를 좋아하고, 그래서 아르헨티나에 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해피투게더' = 아르헨티나. 이런 공식이 만들어진 느낌이랄까.
계속되는 여행에 권태기를 느껴서 쿠바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후 한 달정도 있다가 다시 남미로 나왔다. 권태기라고 말하지만, 이방인으로 지내는 것의 소외감과, 어느 한 곳에 정착해서 지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자는 향수병의 근본적인 원인인 것 같고, 후자는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에서 두 달 반 정도 지냈음에도 해소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권태감도 있었고 향수병도 조금 있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쿠바는 음식이 맛이 없다. 물론 맛있는 집이 있긴 했지만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닭에 소금 후추를 치고 구운 음식밖에 없었고, 이상하게 수도인 아바나에 가까워질수록 맛이 없었다.
어쨌건 쿠바를 여행하면서 '일단 한국으로 들어가자, 들어가서 좀 쉬고 그 뒤 일정을 생각해보자.' 해서 한국으로 들어왔고, '지금이 아니면 남미는 언제 가보나.' 싶어서 한국에 한 달 정도 머무르면서 한국 음식도 충전하고 볼리비아 비자도 받았다. 볼리비아 비자받는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한국에서 한 달 동안 한국 여행을 하고 아르헨티나로 왔는데, 진짜 정말 멀고 힘들다.
서울에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미국을 경유해서 왔다. 미국 애틀란타를 거쳐서 왔는데, 크게 생각하지 않고 경유-스탑오버가 아니라-를 해서 왔다. 정말 너무 힘들다. 서울에서 애틀랜타까지 대략 14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와서 다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10시간을 가야 한다. 그냥 유럽 경유 노선 정도를 생각했었는데, 정말 피곤한 스케줄이다. 정말 시간이 없고 급한 거 아니면 미국에서 하룻밤을 자고 가자.
멕시코를 경험해보고 난 다음이라 그리 긴장이 되진 않았는데, 그래도 첫 여행지로서의 긴장감을 가지고 도착했다. 그래서 그런가 사진이 없다. 사진 안찍었나? 도착해서 환전도 하고 택시를 타고 아르헨티나 시내 숙소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처음이라 한인민박으로 숙소를 골랐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여행 관련 이야기도 나누고 정보들도 알고 여행 시 팁 같은 것들도 얻을 수 있어서 가끔씩 한인민박을 찾았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숙소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다. 이건 한인민박 사장님들 성격이나 그날 묵었던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듯하다.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저녁 일찍부터 잠들어서 다음날 아침까지 대략 15시간 정도를 잤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고 나왔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유럽과 별 차이가 없었다. 건물의 생김새나 거리들이 유럽과 비슷했다. 남미의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그래서 건물들이 유럽과 비슷하다. 소도시로 가면 부에노스아이레스와 같은 대도시와는 좀 달라지긴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된 유럽의 느낌이다.
건물의 모양도 그렇고 냄새도 유럽이랑 비슷하다. 2013년에 유럽 여행을 할 때에 프랑스 파리 외에는 잘 못 느꼈었는데 거리에서 화장실냄새가 나는 곳들이 좀 있었다. 이건 뭐 내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도 어느 특정 장소에 가면 나긴 했었지. 여느 유럽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이 오벨리스크를 보면서 느꼈다. 1946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400주년을 기념하여 4주라는 짧은기간에 세워졌다고 한다. 유럽에서 많이 보던 것이어서 여기에 있는 게 그다지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뒤로는 남미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도시의 이름이 있는 조형물에서는 꼭 사진을 찍었다. 여기도 마찬가지. 일단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뜻부터 보면, 부에노는 좋다, 영어로 하면 good이고 아이레는 공기, 영어로 air다. 에스빠뇰은 명사와 그것들 수식하는 형용사의 수를 맞춰준다. 명사가 단수면 그것을 꾸며주는 형용사도 단수, 명사가 복수면 형용사도 복수로 말이다. 에스빠뇰은 주어에 따라서 남녀 성도 맞춰야 하고 동사도 맞춰야 하고 그에 따른 형용사 부사도 다 맞춰야 한다. 그래서 좀 어렵지만 암기를 잘하면 많이 어렵진 않다. 하지만 외국어는 어렵다. 다시 도시 이름으로 돌아와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뜻이고, 공기가 좋은 도시라는 뜻이다.
도시 이름에 걸맞게 공기도 좋고 하늘도 파란데다가 이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도로가 굉장히 크다. 제대로 세어보진 않았지만-검색하면 나오긴 하겠지만,- 왕복 한 16차로 쯤은 된다. 차도가 큰데 여기에 한가운데에 이렇게 공원 같은 공간이 있다. 그래서 이 도로는 횡단보도를 한 번에 건널 수가 없다. 뛰면 가능이야 하겠지만 보통의 걸음으로는 신호를 두 번 받아야지 길을 완전히 건널 수 있다. 그래서 하늘도 더 잘 보인다. 그래서 이 사진이 더 좋게 느껴진다.
워낙 넓어서 그런지 사진으로는 감이 잘 안온다.
위사진과 아래사진이 한 곳에서 돌아서 찍은 사진이다. 위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도로에서 한 방향으로 가는 차들 무리가 두 개다. 이 도로를 건너가면,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내 뒤로 가는 차들 이 두 무리다. 이 도로 진짜 넓다.
도시의 거리들을 구경하면서 일단 스타벅스로 갔다. 여행계획을 세세하게 짜지 않아서 어딜 가고 무엇을 할지 정해야 했다. 근처 스타벅으로 가서 커피를 주문했는데 콜드브루로 주문했다. 다른 도시들에서는 아메리카노가 콜드브루보다 쌌는데 여기에서는 콜드브루가 더 싸다. 그래서 콜드브루로 먹었다.
콜드브루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싸다. 스타벅스가 있는 곳이라면 도시마다 한 번쯤은 가봤는데 우리나라보다 비싼 데가 별로 없다. 스위스 정도? 노르웨이에서는 스타벅스가 있었나 기억이 잘 안 난다. 노르웨이에서는 지레 겁먹고 레스토랑을 안 갔고, 자동차 여행이 주여서 대도시를 많이 가지 않았다.
지금은 아르헨티나 환율이 박살 나서 공식 환율이 1달러에 219페소다. 내가 여행할 때만 해도 1달러에 40페소 근처였던 것 같다. 대충 계산했을 때 1 아르헨티나 페소가 한화 약 30원 정도였으니까 달러로 치면 1달러에 40페소 정도가 나온다. 아르헨티나 여행 팁 중에 하나가 공식 환율과 암환율이 달라서 고액 달러 화폐를 가지고 가서 암환전상에게 환전하면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이었는데, 내가 갔을 때에도 환율이 아르헨티나 입장에서 좋을 때가 아니라서 암환전이랑 공식 환전이랑 큰 차이가 없었어서 공식 환전소에서 환전을 했는데, 지금은 위험을 무릅쓰고 암환전을 할 이유가 더더욱 없어졌을 듯하다. 그만큼 여행객에게는 더 비싸게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힘내요, 아르헨티나.
더 비싼 음료를 더 싸게 먹는다는 개운한 마음으로 커피 마시면서 우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엘 아테네오(El Ateneo)에 가기로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우버를 이용하면서 다녔다. 여행할 때 한 가지 팁을 말해주자면, 유럽이든 어디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장소,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에는 더더욱 조심하라고 하는데, 처음 가보는 도시인 경우, 미리 사전에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현지인들이 다니는 모습을 보면 대충 어느 정도 위험한지(?) 알 수 있다. 현지인들이 소지품들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닌다면 비교적 안심할 수 있는 곳이지만, 현지인들도 소지품들을 좀 조심해서 다닌다면, 예를 들어 백팩을 앞으로 메고 다닌다던가 하면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내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그랬다. 다른 도시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사람들이 백팩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위험한 곳이라면 숙소 리셉션이나 호스트들이 조심하라고 경고해 준다. 너무 앞서서 걱정하지는 말자. 조심하면 된다.
엘 아테네오 입구는 이렇게 생겼다. 우버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서 들어간 거라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앞 인도도 그리 넓진 않아서 화각이 이 정도다. 위를 올려다보면,
이렇게 생겼다. 밖에서 보기에 엄청 커 보이진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책들과 계산하는 곳이 있고 안으로 더 들어가면,
이런 모습이다. 이 서점이 원래는 오페라 극장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정면에 보이는 커튼에서 공연도 했었다는데 지금은 공연은 하지 않고 오직 서점으로만 운영된단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들어서 그런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이런 타이틀도 붙었다는데, 이런 거 누가 붙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예쁘다.
서점을 한 바퀴 돌면서 구경했다.
서점이 오페라 극장이었던 곳이라서 그런지 층이 많고, 구조가 특이하다. 일층을 제외한 층에는 공간이 그리 넓지 않았다. 관람을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는듯하다.
천장에는 그림도 있다. 여기가 성당이 아니라 공연장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유럽의 성당들을 보면 천장화가 빈틈이 없이 가득가득 들어가 있는 느낌인데 여기는 좀 휑한 느낌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는 기차역의 천장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아마 성당이 아니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이층과 삼층에는 벽면으로만 책장이 있다. 좌석이 있던 곳이었을 테니 좀 좁다.
들어오는 쪽은 이렇게 생겼다. 그냥 공연장이다.
무대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간단한 식사도 할 수 있고 커피나 차, 음료만도 마실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곳에서 밥을 먹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밥을 먹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의미만 있는 걸로. 맛은 보통이었다. 피자야 워낙 맛이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슈니첼은 그냥 튀긴 음식이라 크게 맛이 없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럭저럭이었다면 별로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음식 사진에 물도 같이 보여서 물 이야기를 해야겠다.
유럽에서도 그렇고 남미에서도 그렇고 그냥 물과 탄산수가 있다. 남미에서는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음식점과 마트에서 탄산수를 쉽게 볼 수 있다. 마트에는 대용량 탄산수도 있고, 맥주 케그처럼 전용 용기에 담아서 파는 탄산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탄산수를 좋아해서 잘못 고르더라도 상관이 없는데, 탄산수를 싫어하시는 분에게는 물을 고르는 것도 그 나라 언어를 잘 모르면 운에 맡겨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탄산수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남미에서는 'con'과 'sin'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진에는 'sin gas'라고 적혀있는데, sin은 '~이 없는'이라는 뜻이어서 'sin gas'라고 하면 '가스가 없는'이라는 뜻이고 탄산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con gas'라고 적혀있는 물이 있는데, con은 '~과 함께'라는 뜻이어서 'con gas'라고 하면 '가스와 함께'라는 뜻이고 탄산이 있다는 뜻이다. 탄산수가 먹고 싶으면 'con gas', 그냥 물이 먹고 싶으면 'sin gas'다.
사족을 조금 달면, 음식점에서 물을 주문할 때 그냥 물은 "agua sin gas, por favor." 하면 되고, 탄산수를 먹고 싶으면 "agua con gas, por favor." 하면 된다. 'Agua'는 물을 뜻하고, 'Por favor'는 영어의 'please'와 같은 뜻으로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제발'인데, 예의를 갖춘 말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영어권 국가에서 "One water, please.' 하는 것이랑 같다. 사실 여행하면서 쓰는 에스빠뇰이 많지는 않으니, 음식점을 예로 들자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을 하고 끝에 'por favor'를 붙이면 된다. 해외 어느 나라든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객에게 엄청 예의를 갖추길 바라는 현지인은 없다. 그래서 주문 끝에 'please'나 'por favor'를 붙일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서로 간의 존중해야 하는 것이 있으니 끝에 꼭 붙여서 쓰면 좋겠다.
음식을 다 먹고 그다음으로 간 곳은 라 레콜레타 공동묘지.
역대 대통령부터 시인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 있는 사람은 영화 에비타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이다.
인기나 인지도에 비해 묘지가 좀 단출하다. 도굴을 막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어놨다는데 인기가 너무 있어서 오히려 눈에 잘 안 띄게 만들어놨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잘 몰랐지만 유명인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묘지들도 화려한 것들이 많다. 여기에 비하면 에비타는 좀 단출한 느낌이 든다. 공동묘지 입구로 들어가면,
안내판이 있다. 묘지를 마치 지도처럼 구역을 정해서 안치되어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려주는데, 이름이 정리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찾기가 힘들다. 뭐 아는 사람도 없어서 찾을 사람도 없었지만, 다행히 누군가가 에비타의 묘를 표시해 놔서 그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유럽도 그렇고 남미도 그렇고 묘지가 도심 한가운데에 있다. 높은 건물이 삥 둘러서 있어서 어디를 둘러봐도 건물이 보인다. 반대로 말하면 옆 건물에서 묘지가 다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문화와의 차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과 함께한다는 문화인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심지에서 소화할 수가 없어서 외곽으로 멀어진다고도 하는 거 같던데, 묘지를 워낙 화려하게 지어놔서 우리나라의 풀이 자란 무덤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매체의 영향이 없지도 않겠지만 우리나라 묘지와는 다른 게 유럽이나 남미는 그 영향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반감이 덜한다. 그 예가 하나 떠오르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다. 묘지, 무덤, 죽음을 얼마나 예쁘게 그려놨나.
라 레콜레타를 둘러보고 근처에 있던 쇼핑몰도 구경하고 거기 있던 맥도널드에서 둘세 데 레체(dulce de leche)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사진이 없네. 아르헨티나에서 인기가 많은 스프레드다. 캐러멜로도 먹고 아이스크림으로도 먹고 잼으로 만들어서 빵에 발라먹기도 한다. 맛있다.
다음날 세계여행 준비를 같이 했던 지인분들을 만나서 탱고를 볼 예정이니 얼른 들어가서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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